검색결과
'서울대 문리대 시위'에 대한 통합 검색 결과 : 전체 15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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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사료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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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act Sheet #2. [73. 10. 2 서울대 문리대 학생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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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913602
날짜 : 1973.10.14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Jones, Linda Huffman
요약설명 : 서울대학교 문리대 학생회 간부들이 서울대 4.19 기념탑 앞에 모여 유신독재체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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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act Sheet #5. The "Yushin" constitution of Sout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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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913605
날짜 : 1974.02.2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Jones, Linda Huffman
요약설명 : 10월 2일 서울대 문리대 시위 등 유신체제에 대한 저항,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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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스크랩]서울대생 2명, 숭전대생 셋도 시위주동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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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985791
날짜 : 1983.06.11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신대학교
요약설명 : 서울대 농대 신관에서 유인물을 뿌린 뒤 교내시위를 주동한 혐의로 김명서와 이준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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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컬렉션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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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콘텐츠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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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태의 그날, 1960년 4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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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게 보였다. 혜화동은 서울대의 문리대 의대 사범대 등이 가까이 있었다. 은밀히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그들 대학에서 오늘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중요한 시위가 계획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었다. 그가 다니던 동성고에서도 이미 학생들 사이에 정의로운 거사에 우리가 앞장 서야한다는 여론이 급속히 퍼져가고 있었다. 운동장에는 언제 나왔는지 벌써 50여 명의 학생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낌새를 알아차린 경찰은 일찌감치 학교 앞 골목에 경찰병력을 배치해 놓고 있었다. 성급한 마음에 먼저 뛰쳐나간 일부 학생들은 체포되어 몽둥이로 엄청나게 얻어터지고 백차에 실려 경찰서로 끌려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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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호로 보는 한일회담반대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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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3월 24일 서울대 문리대 시위. 문리대 학생들은 '제국주의자 및 민족반역자 화형집행식'을 열어 이완용과 이케다의 허수아비를 불태웠다. 이른바 매국노 화형식이다. 이어 오후 2시경 문리대 학생 약 300명이 ‘사수하자 평화선’, ‘일본제국주의 말살하자’ 등의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교문을 박차고 나와 시위에 돌입하였다. 이날 시위가 한일회담반대운동의 출정식인 셈이다. 사수하자! 평화선 1964년 3월 24일 서울대 문리대 시위. 평화선 문제에 대한 반발도 컸다. 이승만대통령은 맥아더라인 폐지를 앞두고 기존의 권리를 유지하기 위해 1952년 1월 인접해양에 대한 주권에 관한 선언을 발표했다. 이때 그은 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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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언문으로 본 4.19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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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플래카드를 높이 쳐들고 교문을 나와 태평로에 있는 국회의사당을 향해 달렸다. 평화적으로 진행된 시위는 저녁 6시 40분까지 계속되었다. 학생들은 경찰 차량의 선도에 따라 귀교길에 올랐다. 행렬이 을지로 4가에 다다르자 선두의 경찰 차량은 청계천 4가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오후 7시 20분경 행렬이 청계천 4가 천일백화점 앞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도로 옆 골목 안에서 괴한들이 뛰어나와 행렬을 습격하였다. 100여 명의 괴한들은 쇠망치, 몽둥이, 벽돌 등의 흉기로 닥치는 대로 학생들을 때리기 시작했다. 선두에 있던 학생 수십 명이 순식간에 쓰러졌다. 10분도 채 안된 사이에 학생 200여 명이 쓰러졌다. 중상자 20여 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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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 아카이브 1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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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사료 13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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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무대 앞에서 경찰과 마지막 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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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60.4.19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요구조건을 급히 꾸몄다.서울대학교 의과학생 자치위원회, 160쪽. 일부 기록에서는 이를 “4월 19일 오후 진명여고강당인 삼일당 앞에서 대학연합시위대가 채택한결의문”이라고 하였다(『4·19의 민중사』, 학민사1984, 75-76쪽). 당시 서울대에서 발행한 대학신문에는 “학생들이 경무대로 향하는 동안 서울대의 윤일선 총장과 이양하 문리대 학장, 신태환 법대 학장을 비롯한 각대학 학장들과 교수들이 달려와 근심어린 표정으로 시위 모습을 지켜보았다. 윤 총장은 직접 시경국장과 협의하여 동대문서로 연행된 학생들의 석방을 조건으로 시위를 중지시키려고 하였으나 이미 노도처럼 밀려드는 학생들에게 이를 전달할 방도가 없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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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위대, 경찰 저지망 뚫고 국회의사당까지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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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60.4.19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건너편 신신백화점(현 제일은행 본점) 옆에 위치하였다.의사당 앞에서 강력히 제지하는 경찰대와 잠시 충돌한 시위대는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의사당 앞에 모인 학생들 중 서울대 여학생 한 명이 앞에 나가 선언문을 낭독하였다. 여학생 수 백 명을 포함한 학생들은 “이승만 박사 물러가라!”, “불법으로 치룬 3·15선거를 불법으로 감행한 책임자를 이 자리에 불러내자!”며 목이 쉬도록 구호를 외쳤다.『대학신문』1960. 5. 2 3면 ; 『조선일보』1960. 4. 19 석1·3면 ;『동아일보』1960. 4. 20 조1·3면, 석3면. 4·19 시위에 대한 좌담회에서 서울대남학생들은 모두 시위시 각 단과대학여학생들의 의기와 활동에 감복했다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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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숭동 서울대학교 학생들 시위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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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60.4.19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경,조선일보는 서울대생의 시위시작 시각을 “9시 30분 경”이라고 하였다(『조선일보』1960. 4. 19 석1·3면). 그러나 일부 기록에는 오전 9시로(『동아일보』1960. 4. 19 석1면), 또 다른 기록에는 오전9시 20분으로 기록되어 있다(안동일·홍기범 공저, 『기적과 환상』, 영신문화사, 1960, 226쪽).동숭동에 위치한 서울대학교 문리대 학생들의 시위가 시작되었다. 18일 고려대의 시위에 이어 또다시 대학생들이 궐기한 것이다. 서울대는 닷새 전부터 시위를 준비하여 11개 단과대학이 함께 19일 오전 11시에 궐기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미 전날인 18일 고려대 시위가 있어 이에고무되고, 사전에 시위계획을 탐지한 경찰이 학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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